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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북세력, 빨갱이

예수에의해사는자 2015. 9. 10. 15:16

왜 그리 종북. 빨갱이라는 사람이 많아.....나라 괜찮겠나. 야당대표도 빨갱이?

사람마다 어떠한 사회현상에 대한 사고가 진보적이고 보수적일 수 있다. 

그에 따라 사회이념도 진보와 보수로 구별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도 진보적 민주주의와 보수적 민주주의로 구분할 수 있다.

진보적 민주주의는 1930년대 미국의 루스벨트 대통령이 언급한 것이며 또한 북한 김일성이 한번인가 언급했다. 그런데 진보적이며 좌파하면 북한 독재사회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처럼 인식되는 놀라운 사회가 우리나라이다. 하여튼 ‘종북’이 굉장히 문제가 많다고 하는데, 종북의 정의는 어떻게 내려야 하는지, 종북과 친북의 차이는 무엇인지, 종북 숙주와 종북 좌파는 같은 뜻인지, 종북몰이는 왜 그렇게 자주하는지, 도통 그놈의 ‘종북’ 때문에 정신이 헷갈린다.

從北,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북한을 쫓아간다’ ‘북한을 추종한다’ 이다. 종북의 사전적 정의는 북한의 김일성 주체사상과 북한 정권의 노선을 따르는 것을 말할 것이다. 좀 더 보완한다면 종북은 남한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궁극적으로 북한 정권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이다. 그래서 종북주의자로 몰리면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있다.

이미 국민소득에서 남한에 30배 이하로 뒤떨어져 있는 사회, 김일성주의를 종교화한 독재사회, 유니세프 보고서에서도 인간개발 하위국에 올라있는 국가, 그러한 절대적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사회를 추종하는 정신나간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과연 얼마나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더욱이 전쟁 위협과 공포정치, 그리고 핵개발로 버티며 권력을 유지하고 있는 북한의 정치엘리트들을 믿고 따르는 제정신이 아닌 세력이 한국에 정말 있는지, 정확히 알아보았으면 한다.(우리는 이러한 북한의 비참한 실상을 김대중정부의 햇볕정책때문에 확실하게 알게되었다) 

물론 과거 권위주의 정권하에서 주체사상에 경도되었거나, 북한의 대남 혁명전략노선을 베끼기에 급급했던 운동가들이 있었겠지만, 현재 이들이 한국사회에서 설 수 있는 자리는 이미 없다. 그만큼 남북간의 경제적, 사회적 차이가 뒤집을 수 없을 만큼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북한사회가 개방된다면, 북한 정권 담당자들은 종북이 아니라 종남(從南)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 동독 국민들이 서독과 합치는 것을 찬성한 것은 바로 서독의 현저한 경제력 우위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연일 ‘종북’은 정치권에서 뜨거운 감자로 달아오르는가. 우리는 1945년부터 한반도를 갈라놓았던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이념논쟁을 뚜렷이 기억하고 있다. 북한에는 좌익정권이 들어서고, 남한은 보수 우익정권이 차지하면서, 남북은 미국과 소련을 대리한 체제 경쟁에 돌입했고, 각자의 통치 이데올로기를 구축했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하에서의 냉전반공주의는 권력의 생존논리였다. 반공주의에 도전하는 세력이 있다면, 이들은 바로 반체제 인사로 간주되었다.

197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남한이 앞서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자들은 반공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한치의 양보도 없었다. 결과적으로 북한변수는 한국의 보수세력이 그 기득권을 공고히하는 데 적절히 활용되었으며, 사상의 자유와 민주주의 기본권을 억압하는 도구로도 활용되었다.

한동안 잠잠했다가 때 아니게 냉전반공주의 유물로 다시 등장한 종북, 이것이 오늘날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종북 완장을 차고 모두 엎드리라고 호령하고 있다. 너무 시대착오적이며 그 속셈이 너무 훤하게 보인다. 자기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반대편을 무조건 종북으로 몰아가는 종북몰이의 호령, 그 속셈은 이미 다 밝혀져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호령하는 방식보다는 혹시나 우리사회에 존재할지 모르는 종북을 막는 확실한 방법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더욱 신장시켜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세계 선진수준의 경제력과 함께, 국민 모두가 평등하고 행복한 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을 우리 스스로에게, 그리고 북한에게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한다.

(퍼온 글)

덧글

고난 많은 인생 삶 속에서 내 사정을 하소연하고 고통을 호소하며 해결을 간청할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요. 하나님으로부터 세상 살아갈 힘을 얻고 있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모두가 감사하는 삶을 사시면 좋겠습니다.